좀더 알기2>조선후기의 세도정치와 삼정문란

 

조선시대 후기 정치사에서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 심했던 시기인 세도정치와 삼정문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세도정치란 무엇일까? 

세도정치는 순조(1800~1834)때 안동 김씨 가문 출신이었던 김조순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헌종(1834~1849) 때 풍양 조씨 가문의 조인영 등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이처럼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며 국정을 농단하던 현상을 세도정치라고 부릅니다. 

왜 이렇게 한 가문에만 권력이 집중되었을까? 
권력집중의 원인으로는 우선 당시 사회 경제적 배경을 들 수 있습니다.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형 국가였던 조선은 17세기 후반 상업 발달 및 상품 화폐 경제의 성장으로 인해 농민층 분화가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몰락한 양반 계층이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지배층 내부 분열이 심화되어 지방 사족 세력 간 갈등이 격화되고 중앙 정계 진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또한 19세기 들어 대외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부농층이 등장하였고, 이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신분제 동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한편 1811년 홍경래의 난 이래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빈발하자 정부는 삼정문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를 계기로 삼정의 문란 시정 요구가 거세지면서 수령권 강화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시행된 수령권 강화 정책은 오히려 향촌사회에서의 토호세력 형성을 촉진시켜 일부 지역에선 반향민화가 가속화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조정은 부패한 관료 대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인물을 찾게 되었고, 이것이 곧 ‘안동 김씨’라는 특정 가문으로의 권력 집중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삼정문란에 대하여

조선시대 후기 세도정치 시기인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사이에 발생한 정치·사회적 모순이 삼정의 문란과 맞물려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 때 일어난 사회 문제들을 ‘삼정(三政)’이라 하는데,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 등 국가 재정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폐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정은 토지세이고, 군정은 군대 관련 세금입니다. 환곡은 흉년때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후 갚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즉, 쉽게 말하면 돈내고 농사 짓는건데 제대로 못받아서 난리난거죠. 왜 하필이면 백성들이 고통받은 시대였을까? 
당시 양반층은 특권의식이 강했고, 지배층으로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했습니다. 또한 부패한 관료나 탐관오리에게 뇌물을 바치고 관직을 얻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에서는 국방비 지출 증가 및 전쟁 준비 명목으로 많은 양의 세금을 부과하였고, 결국 가난한 농민들은 더욱 살기 어려워졌습니다. 
농민봉기가 일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백성들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자 일부 농민들은 부당한 조세 부담에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홍경래의 난, 임술농민봉기 등이 있습니다. 특히 19세기 초 평안도 지역에서 크게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은 당시 서북지역 차별정책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호응하게 되어 이후 수많은 농민봉기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