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1>조선의 탄생: 이성계와 이방원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과 이성계라는 사람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이번 주제는 조선개국의 일등공신이자 고려말 최고의 무장이었던 이성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성계는 왜 하필이면 위화도 회군을 했을까요?
고려 말 당시 원나라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공민왕때 쌍성총관부를 공격해서 되찾았지만 이후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다시 돌려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최영장군이 요동정벌을 주장했는데요, 결국 우왕 때 4불가론(작은나라인 우리가 큰나라를 치는것은 불가하다)을 내세우며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출병하게됩니다. 하지만 압록강 근처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리죠. 이것이 바로 위화도 회군입니다.
이성계는 어떻게 조선을 건국했을까요?
이성계는 처음엔 신진사대부 세력이었지만 점차 힘을 키워가면서 권문세족들을 몰아내고 1392년 마침내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이때 정몽주 등 많은 충신들이 목숨을 잃었죠. 그리고 왕권강화를 위해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면서 경복궁을 지었습니다. 또한 유교국가로서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았죠.
이성계는 과연 좋은 왕이었을까요?
물론 나쁜 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훌륭한 왕이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우선 자신의 아들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수많은 신하들이 목숨을 잃었고 심지어 태조의 부인 강씨마저 죽음을 맞이했죠. 게다가 불교를 배척하고 숭유억불정책을 펼치면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방원! 피의 군주가 되었을까?
그의 아들 이방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조선건국과 왕자의 난입니다.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었던 이방원은 아버지인 이성계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왕권 다툼 속에서 결국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게 되는데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왕자의 난이란 무엇인가요?
왕자의 난은 1398년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이자 태종 이방원과 넷째형이었던 이방간이 일으킨 반란사건입니다. 당시 세자였던 이방석을 지지하던 정도전과 적장자계승 원칙을 주장한 이방원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이방원이 군사를 이끌고 가 정도전을 제거하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때 방번과 방석 두 명의 동생 또한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제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합니다. 그 후 1400년 후계자 계승문제로 이방간(이방원의 넷째형)과 박포가 결탁하여 일으킨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싸움이 일어났지만, 곧바로 진압되고 관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형과 그의 조카는 유배를 보내버린다. 이를 제2차 왕자의 난이라고 부른다. 결국 이방원이 조선의 3대왕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왜 이방원은 권력다툼속에서 승리하였나요?
사실 이방원은 처음부터 야심이 있던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위화도 회군 이후 정권을 잡은 이성계 세력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을 느낀 이방원은 정몽주를 암살하며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1차 왕자의 난 때 모든 정적들을 제거함으로써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군주가 되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왜 세종대왕에게는 좋은 아버지였을까요?
세종대왕 하면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성군 중 한명이죠. 이러한 세종대왕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신하들의 도움이 있어야 했습니다. 특히나 태종이방원은 세종대왕 시절 무려 18년간 재위했고, 1418년부터는 상왕으로서 국정을 총괄했습니다. 즉, 세종대왕 치세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죠. 따라서 세종대왕 입장에서는 자기 자식 교육을 제대로 시켜준 고마운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