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알기4> 5.16군사정변과 12.12사태

 

5.16군사정변과 12.12사태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굵직굵직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힙니다. 둘 다 군사쿠데타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성격면에서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두 사건을 간단하게 비교하면서 차이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건 모두 쿠데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쿠데타는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일으킨 무력행동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차이는 주체 세력입니다. 5.16군사정변은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의 일부 장교들이 주동하였습니다. 반면 12.12사태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차이는 목적입니다. 5.16군사정변은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헌법기관을 설치하면서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러나 12.12사태는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 대장을 체포함으로써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쿠데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차이는 정권장악 과정입니다. 5.16군사정변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의 협상을 통해 장면 내각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12.12사태는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무력을 동원하여 강압적으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두 사건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나요?

두 사건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방법 면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이를 각각 '정변'과 '쿠데타'라고 구분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두 사건 이후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먼저 5.16군사정변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로 등장한 군부정권이었고, 이로 인해 제 2공화국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죠. 반면 12.12사태는 4.19혁명 직후인 1960년대 말~70년대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속에서 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시해사건을 계기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 대장을 체포함으로써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쿠데타였습니다 권력을 잡은 신군부 세력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며 본격적인 집권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사건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먼저 5.16군사정변은 1961년 5월 16일 새벽 0시를 기해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장교들을 중심으로 서울 시내 주요 기관을 점령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4.19혁명으로 탄생한 장면 내각은 불과 1년 만에 붕괴되었고, 결국 1963년 10월 15일 민정 이양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세력을 요직에 앉히면서 이후 유신체제를 선포하였고, 1972년 7월 14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습니다. 한편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당했죠. 다음으로 12.12사태는 앞에 설명했듯이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한 사건으로 1980년 5월 초순경 김대중 등 재야인사들에 대한 내란음모사건 수사를 진행 중이던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장군은 그해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발표를 하고, 이에 반발하여 5월 18일 전남대생 200여 명과 계엄군간에 충돌이 일어났으며, 5월 19일에는 광주시민들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의 과잉진압과 집단발포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이날 밤 11시경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소요사태가 악화되어 무정부상태로 빠질 경우'를 대비한다며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의 병력을 광주에 투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항쟁지도부를 무력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공수부대원들은 광주의 고립을 우려해 철수명령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분노한 광주시민들은 전남도청 앞에서 연일 규탄시위를 벌였고, 27일부터는 매일 범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하면서 투쟁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러던 중 5월 27일 새벽 0시를 기해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도청광장으로 진격하였으며, 저항하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습니다. 그리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다수의 부상자들은 병원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떤 일이든 절대 선과 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시대정신이란 미명 아래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있고,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사건을 바라볼 때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