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알아보기(선사시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문자사용여부로 나누어진다. 
역사라는 것은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구분되어지기도 한다.

선사시대의 전개

*인류의 기원

최초의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며 현생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약 4만 년 전)가 출현했습니다.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약 70만 년 전에 나타났으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평남상원 검은모루 동굴, 경기도 연천 전곡리, 충남공주 석장리 등이 있습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뼈도구와 뗀석기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하면서 사냥도구(주먹도끼, 찍개, 사냥과 채집)와 조리도구(긁개, 밀개)를 이용하였습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동굴, 바위그늘, 강가에 막집짓고 살았으며 무리 지어 이동생활을 했습니다. 평등한 공동체적 생활을 하였습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으며, 간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식량의 저장과 정착생활의 증거)이며, 농경생활이 시작(돌괭이, 돌삽, 돌보습, 돌낫)되었다.
원시적인 수공업생산(가락바퀴, 뼈바늘)이루어졌으며 옷이나 그물생산을 만들었습니다. 집터는 대개원형, 모서리가 둥근 네모꼴이며, 중앙에 화덕이 위치하였다. 신석기시대는 부족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혈연을 바탕으로 씨족을 기본구성단위로 합니다. 다른 씨곡과의 혼인(족외혼)을 하였다. 애니미즘(자연물, 자연현상에 정령이 있다), 샤머니즘 및 토테미즘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국가의 형성-역사시대

청동기의 보급

기원전 20세기경에서 15세기경으로 생산경제가 발달하여 사유재산 재도와 계급발생이 나타나서 사회전반에 걸쳐 큰 변화(고인돌)가 일어났습니다. 반달돌칼, 비파형동검, 거친무늬 거울, 미송리식 토기가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철기의 사용

기원전 5세기경에 접어들면서 청동기는 의식용 도구로 변하였고 한반도 안에서 독자적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세형동검, 잔무늬거울, 거푸집이 여러지역에서 발견됩니다.

청동기. 철기시대의 생활

나무로 만든 농기구로 땅을 개간하고 곡식을 심고 반달돌칼로 이삭 잘라 추수하였다. 집터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주출돌을 이용한 움집은 점차 지상가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농경발달과 인구의 증가로 정착생활의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잉여생산물증가로 개인소유가 이루어져 빈부의 격차와 계급분화(고인돌)가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힘있는 부족은 스스로 선민사상을 가지고, 족장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단군과 고조선

*고조선은 단군왕검(제정일치)이 건국(기원전 2333년)하였다.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의 출토분포는 고조선의 세력범위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주로 구릉지대에 거주하며서 농경생활을 하였으며, 사유재산의 성립과 계급분화가 일어났습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홍익인간)는 통치이념으로 삼았습니다.
*위만조선은 철기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였으며, 농업과 무기생산 중심으로 수공업을 발전했으며상업과 중계무역도 발달하였습니다. 기원전 108년에 왕검성 함락으로 멸망하였습니다.
고조선의 8조법을 통해서 권력과 경제력의 차이가 생겨나고 재산의 사유가 이루어지면서 형벌과 노비도 발생하였슴을 알 수 있고 노동력과 사유재산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의 국가들의 모습

*부여는 만주길림시 일대를 중심으로 송화강 유역의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농경과 목축을 주로 하였고 말, 모피가 유명하였다. 왕아래에 마가, 우가, 구가, 저가와 대사자, 사자(관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출도(행정조직)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순장의 풍습과  남의 물건을 훔치면 물건값의 12배 배상하게 했고, 영고라는 12월에 열리는 제천행사가 있으며, 수렵사회의 전통을 보여줍니다.
*고구려는 주몽이 건국(기원전 37년)하였으며 졸본지방에 자리잡았습니다.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겨 5부족연맹을 토대로 활발한 정복전쟁을 펼쳤습니다. 왕 아래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으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렸습니다. 제가회의가 있으며, 10월에는 동맹이라 추수감사제와 제천행사가 열렸으며 서옥제라는 풍속이 있습니다.
*옥저는 함경도 및 강원도북부의 동해안에 위치하며 읍락(읍군 또는 삼로)있으나 큰 정치세력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어물과 소금 등 해산물이 풍부하였고, 토지가 비옥하며 민며느리제 풍속이 있었습니다.
*동예도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농경, 어로등 경제생활이 윤택하였습니다. 방직기술(명주와 삼베)이 발달하였고 특산물(당궁, 과하마, 반어피)있습니다. 10월에는 무천이라는 제천행사가 열렸으며, 족외혼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책화(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노비와 소, 말로 변상)가 있습니다.
*삼한은 '진'이 성장하여 남하하여 토착문화와 융합하면서 더욱 발전하여 마한, 변한, 진한의 연맹체들이 나타났습니다. 마한은 천안, 익산, 나주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하였고 변한은 김해, 마산지역을 중심으로 진한은 대구,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삼한지배자 중에서 신지, 견지, 읍차가 있으며 천군(제사장), 신성지역(소도)가 있으며 제정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두레조직을 통해 공동작업을 하며 5월 수릿날과 가을곡식을 거두는 10월 계절제를 열어 제천행사를 하였다.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농경사회로  변한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 왜 등에 수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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