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요 7> 을사조약에 대해 알아보자
을사조약(乙巳條約) 개요
을사조약(乙巳條約)은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강제 체결된 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강제로 빼앗긴 사건이다. 공식 명칭은 "제2차 한일협약(第二次 韓日協約)" 이며, 을사년에 체결되었다 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 이라고도 한다.
1. 배경
①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 계획
-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며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 계획을 본격화함.
- 같은 해 2월 한일의정서를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군사적 점령을 합법화함.
- 1905년 5월에는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여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것을 미국이 묵인하도록 함.
-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도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우위를 인정함.
② 외교 고립 속 대한제국
- 대한제국은 러시아·미국 등 외국의 도움을 기대했으나 국제적으로 외교적 지원을 받지 못함.
-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는 끝까지 일본의 요구를 거부했으나, 일본은 강압적으로 조약 체결을 강요함.
2. 조약 체결 과정
① 강압적인 협상
- 1905년 11월 17일, 일본의 특명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가 대한제국의 궁궐을 군대로 포위한 상태에서 대신들을 압박함.
-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끝까지 조약 체결을 거부함.
- 일본은 대한제국의 대신들을 협박하여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도록 만듦.
② 을사오적(乙巳五賊)
조약 체결에 찬성한 5명의 대신을 을사오적(乙巳五賊) 이라고 부름.
- 이완용 (외부대신)
- 박제순 (내부대신)
- 이근택 (군부대신)
- 권중현 (농상공부대신)
- 이지용 (탁지부대신)
이들은 일본의 강압에 굴복하여 조약에 서명하였으며, 이후 매국노로 낙인찍혀 역사적으로 큰 비난을 받음.
3. 조약 내용
📌 주요 조항
-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이 완전히 장악함.
- 대한제국 정부에 통감부(統監府) 를 설치하여 외교 사무를 담당하도록 함.
- 대한제국은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 어떠한 외교 행위도 할 수 없음.
- 대한제국 내 일본인의 권익을 보호할 것을 명시함.
👉 결과적으로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이 되어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함.
4. 조약의 영향
① 대한제국의 국권 상실
- 외교권을 빼앗기며 주권을 사실상 상실함.
- 1906년 통감부(統監府) 가 설치되고,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함.
- 1910년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으로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계기가 됨.
② 국내 반발과 저항
- 고종 황제는 끝까지 조약을 인정하지 않음.
- 민영환, 조병세 등의 대신들은 항거하며 자결함.
- 의병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됨.
- 1907년, 고종이 헤이그 특사(헤이그 밀사 사건) 를 파견하여 조약이 무효임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 했으나 실패함.
5. 조약의 무효성
대한민국 정부는 을사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된 불법 조약으로서 애초에 법적 효력이 없다고 판단함.
- 조약 체결에 대한 황제의 승인이 없었음.
- 국제법적으로도 강제 체결된 조약은 무효임.
-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협정에서도 일본이 조약의 부당성을 인정함.
6. 결론
을사조약은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고 일본의 식민지화를 앞당긴 비극적인 조약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선인들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 이후 독립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을사조약은 우리 역사에서 일제 침략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