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9>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명사 유일한 박사
유일한(柳一韓, 1895년 1월 15일 ~ 1971년 3월 11일) 박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자 독립운동가, 교육자, 사회사업가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제약업의 선구자로, 유한양행을 창립하여 한국 경제와 보건 분야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1. 생애와 성장 배경
출생과 미국 유학
- 유일한 박사는 1895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 1904년(9세)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 어린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며 학업과 독립운동을 병행했습니다.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 1919년, 미시간 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 대학 시절 **흥사단(도산 안창호 설립)**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독립을 위해 재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2. 유한양행 창립과 경영 철학
창립 배경
- 1926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유한양행(柳韓洋行)을 설립하였습니다.
- 당시 국내에는 변변한 제약 회사가 없어 대부분의 의약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기에, 그는 국민 건강을 위한 제약업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경영 원칙
- "기업의 이윤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 유한양행을 단순한 이윤 추구 기업이 아니라, 국민 건강 증진과 사회공헌을 위한 기업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 정직한 경영, 철저한 품질 관리, 인재 양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3. 사회공헌과 교육 활동
- 전 재산 사회 환원: 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사유화보다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 1969년, 유한양행의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여 기업이 특정 개인이나 가족의 것이 아닌 공익을 위한 기관이 되도록 했습니다.
- 유한재단 설립(1953년): 교육 및 장학 사업을 위해 유한재단을 설립하고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 유한공고 설립(1958년): 실업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을 위해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4. 유일한 박사의 사후 영향
- 유한양행은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제약회사로 성장했습니다.
-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한 그의 철학은 현대 기업 경영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유한양행은 지금도 그의 뜻을 이어받아 지속적인 사회공헌과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5. 유일한 박사의 명언
"성공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기업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
6. 결론
유일한 박사는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교육자, 사회사업가로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경영 철학과 사회적 기여는 지금까지도 한국 기업 문화와 사회공헌 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는 ‘기업을 통한 사회 발전’을 실천한 모범적인 인물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